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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심리학

전쟁 뉴스가 반복될수록 감정이 무뎌지는 이유: 심리적 둔감화 이론

by thatswrite 2025. 6. 23.

반복 노출이 감정을 마비시키는 심리 메커니즘

 전쟁 뉴스가 처음 보도될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 공포, 안타까움 같은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 뉴스가 반복되어 등장하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 충격적인 장면이나 참혹한 이야기에도 ‘익숙해진 듯한’ 반응을 보인다. 이는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심리학에서 말하는 '심리적 둔감화(Psychic Numbing)' 또는 '감정 둔감화(Emotional Desensitization)'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폴 슬로빅(Paul Slovic)은 이러한 감정 마비 현상을 설명하며, 인간은 수치나 규모보다 '한 사람의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즉, 피해자가 수백 명이라는 수치로 제시될 때보다, 한 명의 얼굴이 드러난 사례가 있을 때 더 큰 연민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복된 전쟁 뉴스에 과잉 노출되면, 감정 시스템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감각’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뇌의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편도체(amygdala)의 과부하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미디어 피로와 정보 과부하가 만든 무관심의 벽

 최근 뉴스 소비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충격적인 사건에 노출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이란-이스라엘 충돌, 내전, 대형 화재, 지진, 테러 등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는 '미디어 피로(Media Fatigue)' 또는 '뉴스 피로(News Fatigue)'라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정치나 전쟁 관련 뉴스를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뉴스 자체를 덜 소비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관심 부족이 아니라 ‘정보 과부하(Information Overload)’에 대한 자가 방어적 반응이다. 사람의 인지 용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지속적으로 접하면 감정적으로 압도당하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피로는 특히 정서적으로 예민한 이슈일수록 강하게 작동하며, 결과적으로 전쟁과 같은 이슈에 대한 감정적 무관심을 야기하게 된다.

미디어 피로와 이타적 고갈: 정보 과잉 시대의 감정 탈진

전쟁 뉴스로 인한 심리적 둔감화 이론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쟁, 참사, 재난, 테러에 관한 뉴스를 접한다. 스마트폰 푸시 알림, SNS 피드, 유튜브 알고리즘, 뉴스 앱까지 곳곳에서 폭격하듯 날아오는 전쟁 소식은 처음에는 경악과 슬픔을 유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감정 반응은 점차 무뎌지게 된다. 이는 ‘미디어 피로(media fatigue)’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반복적으로 충격적인 정보를 접하게 될 때 인간의 뇌가 이를 방어기제로 무감각하게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즉, 감정 에너지를 무한정 사용할 수 없는 뇌는 살아남기 위해 '감정의 소비'를 점차 줄여나간다. 처음에는 뉴스를 보고 눈물이 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또 전쟁이네"라고 말하며 휘발성 있는 반응만 남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감각화는 개인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공감 피로가 확산되며, 이는 ‘이타적 고갈(altruistic burnout)’로 이어진다. 이타적 고갈이란 사회적 약자나 고통받는 집단을 돕고자 했던 감정 자원이 반복적인 비극에 노출되면서 소진되어 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나 적십자, 월드비전 등의 단체들이 과거에 비해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 대한 기부나 자원봉사 참여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보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았어"라며 마음의 문을 닫고, 뉴스조차 클릭하지 않게 된다.

 

 이타적 고갈은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공동체적인 윤리 감수성까지 저해할 수 있다. 전쟁의 피해자들이 점차 '숫자'로만 받아들여지고, 뉴스 속에서는 "사망자 5만 명"이라는 표현이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정 반응을 유발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사회학자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라는 저서에서, 전쟁 사진과 뉴스는 처음엔 우리를 흔들지만 결국엔 무감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녀는 반복 노출이 오히려 인간성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디어의 책임도 크다. 자극적인 이미지, 선정적 헤드라인, 감정적 편집은 순간적인 클릭을 유도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뢰 상실과 감정 피로를 가중시킨다. 사용자는 더 이상 전쟁을 ‘인간의 고통’으로 인식하지 않고, 콘텐츠 중 하나로 소비하며, 이를 통해 감정적으로도 차단된 상태가 된다. 결국 이러한 미디어 피로와 이타적 고갈은 전쟁에 대한 관심과 공감, 행동을 점점 마르게 만들고, 이는 국제사회의 연대와 대응력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하게 된다.

 

감정 둔감화가 시민 의식과 민주주의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

 전쟁 뉴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감정이 둔해지는 현상은 단순한 개인 감정의 변화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시민 의식의 약화와 민주주의의 기능 저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회 구조적 문제로 확장된다.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시민의 감시, 참여, 비판을 통해 유지되는 제도이다. 그러나 감정이 무뎌진 시민은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민감성도 낮아지며, 사회적 연대 역시 약화된다. 이처럼 감정의 둔감화는 정치적 무기력감과 연결되어, 결과적으로 ‘위기의 정상화’라는 위험한 인식을 초래하게 된다.

 

 실제로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상화 효과(normalization effect)라고 부른다. 즉, 비정상적인 상태가 반복되면 점차 ‘일상’처럼 느껴지고, 사람들은 그 상황을 더 이상 문제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전쟁, 폭력, 억압, 고통이 익숙해질수록 시민들은 이를 저지하거나 바꾸려는 시도를 포기하게 된다. 이는 권력자에게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사회가 무관심해질수록 정치적 권력은 견제받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거나 지속시키는 결정을 내릴 때도 반발을 덜 받게 된다.

 

 이런 무관심은 언론과 정치권의 책임 부족을 가속화한다. 언론은 공공성을 강조하기보다 조회수에 집착하고, 정치권은 전쟁을 국내 정치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감정 둔감화로 인해 시민이 제대로 된 감시자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고, 실제론 권력 중심의 일방적 의사결정이 지배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여러 역사적 사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에서도 감정의 무뎌짐은 점차 전쟁을 ‘뉴스’로만 소비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평화 여론 형성과 정책 개입에 실패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무감각이 다음 세대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청소년과 청년층은 이미 전쟁이나 재난에 대한 뉴스에 “관심 없어”, “내 일 아니잖아”라고 반응할 정도로 거리를 두며,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외면하게 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교육의 문제이자, 미디어 소비 방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감정적으로 자극적인 콘텐츠만을 반복 노출시키고, 평범하지만 중요한 이슈는 가려지게 만든다. 그렇게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놓치고, 감정의 피로 속에서 윤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전쟁 뉴스의 반복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시민의 감정과 인지, 참여를 구조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피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심리적 장애물로 인식해야 한다. 감정 둔감화는 결국, 연대의 감수성을 무디게 하고, 권력의 오용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며, 사회 전체가 무관심이라는 이름 아래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감정 둔감화를 극복하는 심리학적·사회적 전략: ‘공감 회복’을 위한 일상의 개입

 전쟁 뉴스가 반복되며 사람들의 감정이 무뎌지는 현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인간은 환경과 정보에 적응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순히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기보다, 의식적인 훈련과 환경 설계를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미디어 환경, 감정 회복력, 공동체 연대 등 세 가지 축에서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

 

 첫째, 미디어 다이어트(media diet) 또는 정보 절제 전략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 과부하는 인간의 인지 체계를 압박하고, 감정 소진을 불러오며, 결국 무관심이라는 감정적 보호막을 형성하게 만든다. 이를 막기 위해선 뉴스 소비의 빈도를 줄이고, 자동 알림을 비활성화하거나, 정기적으로 뉴스 없이 하루를 보내는 '디지털 안식일'을 도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특히 감정적 자극이 강한 영상 뉴스보다는, 설명 중심의 글이나 분석 리포트를 통해 정보를 간접적으로 접하는 방식도 감정 과열과 둔감을 동시에 예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감정 회복을 위한 ‘간헐적 노출’로 이해되어야 한다.

 

 둘째, 감정 회복력을 강화하는 일상 훈련이 필요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민감성 훈련(emotional attunement training)’이라고 부른다. 이는 공감 능력을 다시 살리고, 외부 세계의 고통에 연결될 수 있는 감정 회로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인권 관련 영화나 문학작품을 통해 간접 체험을 하거나, 사회적 약자의 시선에서 뉴스를 해석하려는 의도적인 시도도 이에 해당한다. 감정 일기 쓰기, 자기 내면 성찰, 명상, 나와 무관한 이슈에 대한 토론도 정서적 연결을 복원하는 데 효과적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감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경험을 자주 반복함으로써, 점차 무뎌진 감정 회로를 다시 민감하게 되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공동체적 연대 감각을 회복하는 사회적 실천이 필요하다. 사람은 홀로 세상의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다. 특히 전쟁이나 재난처럼 규모가 큰 이슈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사회적 참여의 문턱을 낮추고, 작지만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전쟁 피해자를 위한 기부 캠페인, 피난민을 돕는 시민 자원봉사, 온라인 서명 운동 등은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을 줄이고, ‘나는 연결되어 있다’는 심리적 소속감을 되살리는 데 효과적이다. 이는 단순한 활동이 아닌, 공감의 실천이며, 다시 세상을 민감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이러한 전략은 단기적 해결책이 아니라, 지속적 심리 회복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 둔감화가 일종의 ‘방어 기제’ 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다시 감각을 회복하려는 의식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회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세상의 고통을 함께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 결국 민주주의와 인권은 숫자나 제도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연결된 시민 한 명 한 명의 ‘공감 감수성’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