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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심리학

코즈의 정리와 비합리적 선택의 심리학

by thatswrite 2025. 5. 14.

코즈의 정리란 무엇인가?

― 이상적인 시장은 없고, 비용은 언제나 존재한다

 

 코즈의 정리(Coase Theorem)는 거래비용이 0일 경우,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는 “시장이 완전하게 작동한다면, 개입 없이도 가장 최적의 결과가 도출된다”는 경제학적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나오는 소음이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면, 양측이 자유롭게 협상하고 거래비용이 없다면 그 피해를 조율하고 보상하는 구조가 성립한다. 이때 자원은 자연스럽게 가장 가치 있게 쓰이는 쪽으로 이동하고, 시장은 개입 없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결코 이상적인 시장이 아니다. 거래에는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따른다. 정보를 찾는 시간, 신뢰를 얻기 위한 과정, 감정적 피로, 법적 조율의 복잡성 등이 존재한다. 즉, 우리가 ‘거래비용’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 에너지, 주의력, 스트레스 같은 보이지 않는 자원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처럼 실제 시장에서는 거래비용이 존재하고, 이는 코즈의 정리를 현실에선 무력화시킨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코즈의 정리를 폐기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거래비용이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한 뒤, 그것이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경제적 주체이기 이전에 심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처리하거나, 최적의 판단만을 내리지 않는다. 감정, 습관, 피로, 직관 같은 심리 요소들이 우리의 선택을 지배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코즈의 정리는 행동경제학과 만나게 된다.

 

거래비용이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할 때

― 우리는 실제보다 비용을 작게 또는 다르게 인식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거래비용은 단순히 계약 비용이나 수수료를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훨씬 더 넓은 개념이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사기 위해 검색하는 시간, 여러 사람과 협상하는 과정, 믿을 수 있는 상대방을 찾는 데 드는 에너지, 계약 내용을 검토하고 법적 조항을 해석하는 데 드는 피로감 등이 모두 거래비용이다. 다시 말해, 거래 자체보다는 ‘거래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주는 불편함이 핵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비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심리학에서 ‘인지적 편향’ 또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으로 설명된다. 인간의 두뇌는 복잡하고 추상적인 비용을 정량화하거나 비교하는 데 능숙하지 않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거나 정해진 숫자로 제시되지 않는 거래비용은 쉽게 무시된다. 수수료 5%는 눈에 잘 보이지만, 이 거래를 위해 소모되는 1시간의 시간과 그동안 느끼는 불안감은 비용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런 인지 오류는 실제 소비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직접 만나 거래하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만남에는 이동 시간, 위험 요소, 커뮤니케이션 스트레스 같은 보이지 않는 비용이 따른다. 이처럼 인간은 실질적인 거래비용보다 ‘당장 눈앞의 절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판단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체적인 비용 효율을 떨어뜨리는 결정이 된다.

 

 또한 심리적 거래비용에는 '불확실성 회피'가 포함된다. 사람들은 확실하게 보장된 결과보다 불확실하지만 스스로 판단한 결과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더 간단한 선택을 두고도 복잡한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비효율을 넘어서, 심리적 고통을 초래하는 비합리적 행동 패턴으로 이어진다.

 

효율보다 감정적 만족을 택하는 소비자

― 싸게 샀다는 느낌, 내가 선택했다는 자율성이 합리성을 압도한다

 

 우리는 종종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면서도 만족을 느낀다. 예를 들어, 중고 플랫폼에서 비슷한 제품을 훨씬 더 번거로운 방법으로 구매하고도 “내가 싸게 잘 샀다”는 감정을 갖는다. 여기에는 단순한 가격 이상의 심리가 작용한다. 소비자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오는 감정적 보상에 더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결정성(Self-determination)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한다는 감각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따라서 자동화된 플랫폼의 추천이나 간편 결제보다도, 직접 비교하고 연락하고 흥정하며 제품을 얻은 경험에서 더 큰 자율성과 성취감을 얻는다. 이는 마치 ‘효율’이 아니라 ‘모험과 정복’의 감각에 가까운 만족이다.

 

 또한 합리적 소비의 프레임보다, 나만의 판단 기준을 따랐다는 감정이 자존감과 연결된다. 이때 발생하는 심리적 보상은 때로 가격 차이보다 더 큰 가치로 작용한다. 소비자가 “비효율을 감수하면서도 스스로 결정한 선택”에 더욱 애착을 갖는 이유다. 이런 구조는 인간의 사고 체계에서 체험 기반 정당화(experiential justification)로 설명된다. “내가 이렇게 노력했으니 이건 좋은 거래야”라는 식으로, 노력이 결과의 품질을 역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행동경제학에서 ‘노력 정당화 효과(Effort Justification)’로도 알려져 있다.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을 들인 선택일수록, 결과의 질이 높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효율적인 선택보다 번거롭고 복잡한 거래가 더 ‘보람 있는 소비’로 느껴질 수 있다.

결국 소비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실제 비용이 아니라 심리적 만족감이다. 그리고 이 만족은 때때로 ‘얼마나 싸게 샀는가’보다 ‘내가 주도했는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에서 결정된다. 이는 마케터나 제품 설계자가 소비자 심리를 다룰 때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핵심 중 하나다. 효율보다 감정이 우선일 때, 비합리적 선택은 곧 심리적 합리화가 된다.

 

중개인을 통한 신뢰 확보의 비용

― 우리는 ‘수수료’를 안전과 안심의 대가로 지불한다

 

코즈의 정리와 비합리적 선택의 심리학

 

 많은 사람들이 중개 수수료를 “쓸데없는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수수료는 단순한 금전적 거래 대가가 아니라, 신뢰와 안정성을 구매하는 비용이다. 플랫폼, 보험사, 보증기관, 공식 인증 판매자 등은 실제 거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대신 걸러주고 관리해 주는 기능을 한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인지적 불확실성 회피(Cognitive Uncertainty Avoidance)와 관련이 깊다.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대해 과도한 불안감을 느끼며, 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때 중개인의 존재는 ‘위험 요소를 줄여주는 안전장치’로 작용하며, 수수료는 바로 그 안전장치에 대한 심리적 비용이다.

 

 예를 들어보자. 플랫폼을 통해 숙박 예약을 하면 수수료가 붙지만, 예약 확정, 결제 보증, 리뷰 시스템, 고객센터 등 다양한 안정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 반면, 플랫폼 외부에서 직접 예약을 시도하면 수수료는 없지만, 취소 불가, 일정 누락, 문제 발생 시 대응이 어렵다는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많은 소비자들이 이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수수료 없는 거래를 선택하지만, 그 선택은 결국 더 높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동반하게 된다. 또한 브랜드와의 신뢰 관계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작동한다. 브랜드 제품은 비브랜드 제품보다 비싸지만, 일관된 품질과 A/S, 후기 기반의 신뢰도라는 추가 가치를 제공한다. 결국 브랜드 가격은 ‘신뢰의 프리미엄’이며, 이는 명확한 거래비용 중 하나다.

 

 중개인을 활용하는 거래는 단순히 시간이나 편의를 절약하는 게 아니라, 위험을 줄이고 감정적 불안을 낮추는 행위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뿐, 실제로는 이런 안전장치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문제는 이 비용을 ‘수수료’라는 눈에 보이는 돈으로만 해석하면, 그 가치가 과소평가된다는 데 있다. 신뢰를 위한 비용은 생략되었을 때 더 큰 대가를 요구한다.

 

실생활에서의 거래비용 무시 사례들

― 합리성보다 직관, 비용보다 감정이 우선하는 선택들

 

 일상생활에는 우리가 거래비용을 무시하거나 왜곡해서 판단하는 수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이는 단순한 예산 실수나 판단 착오가 아니라, 반복되는 ‘심리적 패턴’이다. 이 패턴은 대부분 ‘직접비는 아껴도 간접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구조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중고 직거래가 있다. 5%의 안전결제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사용자들은 시간을 들여 만남을 조율하고, 낯선 사람과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감수한다. 그러나 이 만남에는 실제로 교통비, 이동 시간, 날씨, 사고 위험, 불발 가능성 같은 수많은 거래비용이 내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가 수수료를 안 냈다”는 사실 하나로 만족해 버린다.

 

 또 다른 예는 숙박 예약이다. OTA(온라인 여행사)에서 숙소를 예약하면 수수료가 붙지만, 취소 보장과 후기 검토, 고객센터 지원이 포함된다. 반면, 직접 전화나 메시지로 예약하면 수수료는 줄일 수 있지만, 예약 실수, 현장 차이, 문제 발생 시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가 사라진다. 이처럼 수수료가 거래의 일부가 아니라 신뢰와 보장의 대가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직장 내 ‘인맥 통해 해결하기’, 친구 통해 수리 맡기기, 설계사 없이 부동산 계약하기 등에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공식 루트를 우회함으로써 ‘비용을 아낀 것 같지만’, 실은 전문성 부족, 문제 발생 시 대응력 부족, 긴장감 증가, 반복 수정 등의 비용이 뒤따른다.

 

이러한 사례는 결국 “보이는 비용만 판단하고, 보이지 않는 비용은 감정으로 덮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경향은 매우 인간적이며, 그렇기에 마케팅이나 시스템 설계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소비자는 실질적 비용이 아니라 비용의 ‘지각된 방식(perceived cost)’에 반응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더 많은 것을 잃고 있음에도, ‘아꼈다’고 느끼는 것이다.

 

진짜 비용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 우리는 합리적 소비자가 아닌, 감정적 설득의 대상이다

 

 코즈의 정리는 이상적인 시장 조건에서 자원 배분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어나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 인간은 이상적이지 않다. 거래비용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서 우리는 반드시 ‘보이는 비용’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고려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적으로는 만족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사람은 숫자보다 기분에 반응하고, 효율보다 경험을 선택하며, 단기 손실 회피에 집착한다. 이 모든 행동은 심리학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비용을 은폐하고, 비효율을 구조화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정말로 지불하는 비용은 ‘수수료’가 아니라,
👉 의사결정의 피로,
👉 감정적 리스크,
👉 신뢰 구축의 실패,
👉 실패했을 때의 복구 비용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항상 묻는 것이다.
“내가 지금 선택하지 않은 것에는 어떤 숨은 비용이 숨어 있는가?”
“지금 아낀다고 느끼는 이 5%는, 나중에 얼마나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할까?”
이 질문에 꾸준히 답하는 사람이 결국 합리적인 소비자이자, 전략적인 판단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