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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심리학

블록체인, 비트코인, 그리고 심리학이 만나는 지점

by thatswrite 2025. 5. 15.

[신뢰의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인간은 왜 신뢰를 비용으로 대체하는가?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한다고 말할 때, 실제로는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 평판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신뢰란 단지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이 예측 가능하다는 기대에 기반한 심리적 계산이다. 경제학에서 신뢰는 ‘정보 불균형 하의 선택 가능성’으로 측정된다. 즉, 상대방이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면, 우리는 신뢰 대신 검증 수단 또는 비용을 지불한다.

이 점에서 신뢰는 기본적으로 비용 구조와 얽혀 있다. 사람은 신뢰가 불확실하거나 낮은 환경에서는 계약서, 공증, 보증금, 중개 수수료 등의 별도의 보증 장치를 마련하고, 그것을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보상 장치(cognitive surrogate)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실제 신뢰 대신 대체 가능한 증거 또는 시스템을 만들어, 상대방이 ‘믿을 만하다’는 구조를 구성한다.

 

 이러한 행위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과도 직결된다. 신뢰가 충분하다면 거래는 간단해진다. 하지만 신뢰가 불충분하다면, 이를 대체하기 위한 비용이 발생하고, 그 비용은 물리적 비용일 수도 있지만, 종종 감정적, 시간적, 심리적 비용으로 나타난다. 즉, 신뢰는 비용을 줄이는 자산이지만, 신뢰가 없을 땐 오히려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를 갖는다.

 

 이 구조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선택에도 작용한다. 예를 들어, 자주 거래하는 마켓에서 제품을 고를 때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구매하지만, 처음 이용하는 플랫폼에서는 수많은 후기를 읽고, 가격 비교를 하고, 반품 정책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이 바로 신뢰의 부재가 거래비용을 증폭시키는 전형적인 예시다. 신뢰는 '없을 땐 드러나고, 있을 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유무는 거래의 효율성과 비용 구조를 완전히 바꾼다.

[블록체인이 등장한 이유] 신뢰를 수학으로 대체하는 발상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신뢰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기술적 답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신뢰를 감정이나 평판이 아닌, 수학과 구조에 기반한 검증 메커니즘으로 치환한 기술이다. 기존의 거래 시스템은 중개인, 금융기관, 공공기관 등의 ‘중앙 신뢰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반면, 블록체인은 신뢰를 탈중앙화하고, 그 대신 비용을 통해 보장하는 구조다.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 내역을 다수가 공유하는 장부에 기록하고, 이를 암호화하여 조작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사용되는 대표적인 메커니즘이 작업 증명(Proof of Work)이나 지분 증명(Proof of Stake) 같은 알고리즘이다. 이 과정은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게 하거나, 특정 자산을 예치하게 함으로써 네트워크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한다. 결국 블록체인은 말한다. “당신을 믿지 않아도 괜찮아. 대신, 당신은 이만큼의 비용(노력·시간·자산)을 지불해야 해.”

 이 구조는 심리학적으로 보면 보증 비용(Psychological Security Fee)에 해당한다. 인간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을 두려워하지만, 체계화된 규칙과 반복 가능한 검증 구조가 존재한다면 “그 시스템은 믿을 수 있다”라고 느낀다. 블록체인은 그런 신뢰의 ‘기계적 정당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있다. 당시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의 불투명한 운영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자, 신뢰를 개인이나 기관이 아닌, 기술과 알고리즘에 맡기려는 시도가 등장한 것이다. 신뢰가 무너졌을 때, 우리는 ‘사람’ 대신 ‘시스템’을 선택했고, 그것이 바로 블록체인의 본질이다.

[비트코인은 왜 ‘비싼 연산’을 강요할까?] 신뢰의 담보로서의 비용 설계

블록체인, 비트코인, 그리고 심리학이 만나는 지점

 

 비트코인을 비롯한 퍼블릭 블록체인은 '채굴(mining)'이라는 과정을 통해 거래를 검증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비싼 연산’이다. 고성능 컴퓨터가 엄청난 전력을 소모해 수학 문제를 풀고, 이를 통해 거래가 유효함을 증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비효율’이 오히려 시스템의 신뢰를 지키는 장치라는 점이다. 이는 경제학의 지불 능력에 기반한 인증(Payment-based Authentication) 구조이자, 심리학의 노력 기반 신뢰 형성(Effort Justification in Trust) 구조와 연결된다. 사람들은 "이 정도 비용과 노력을 감수할 정도라면, 저 사람은 속일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한다. 이게 바로 신뢰의 비용화다.

 

 비트코인의 경우, 이 연산은 단순히 거래를 처리하는 기능이 아니라, 그 거래가 위조되지 않았고, 전체 시스템 내에서 유효하게 통합될 수 있다는 ‘증거’로서 작용한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의 신뢰는 ‘보증인’이 아니라 ‘비용을 감수한 계산의 결과’다. 여기에는 감정도, 명성도, 평판도 필요 없다. 오직 수학적 비용만이 있다. 이 구조는 마치 “당신이 나를 믿을 수 있도록, 내가 고통을 감수하고 당신 앞에 섰다”는 심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같다. 비트코인의 알고리즘은 시스템 안의 참여자가 스스로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도록 설계되었고, 그 자체가 신뢰를 담보하는 계약 형태가 된다. 이는 인간의 ‘정직함’을 전제로 하지 않고도, 결과적으로 정직한 구조를 유지하게 만드는 ‘인센티브 기반 신뢰’다. 하지만 이 구조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신뢰는 공짜가 아니다’는 교훈을 던진다. 진짜 신뢰란 반복과 경험으로 쌓이는 게 아니라, 의도된 비용과 손실을 감수함으로써 구성되는 경제적 설계일 수 있다. 비트코인의 구조는 바로 이 아이러니를 기술로 실현한 것이다.

신뢰, 권력, 시스템: 왜 중앙화된 신뢰는 위험해지는가?

 우리가 신뢰를 ‘비용 없이’ 제공받을 수 있다고 믿는 순간은 대부분 중앙집중형 시스템 안에서다. 은행, 정부, 거대 플랫폼처럼, 신뢰를 담보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은 거래를 보증하고 문제를 해결해 준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 집중의 문제와 구조적 불투명성을 낳는다. 신뢰의 보증자가 소수일수록, 그 보증자가 신뢰를 배반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글로벌 은행들의 연쇄 도산은 ‘신뢰 기반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수많은 금융기관이 파생상품을 팔고 신용을 포장했지만, 그 근간이었던 ‘신뢰’는 실상 부실한 자산과 조작된 신용평가에 기반한 것이었다. 중앙화된 신뢰는 한 번 흔들리면 전체 시스템이 무너지는 취약한 구조였다.

 이런 점에서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이 제시한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신뢰는 개인이나 기관이 독점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탈중앙화는 기술적인 개념이기 전에,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혁신이다. 인간은 누구도 100% 신뢰할 수 없기에, 그 책임을 ‘시스템 자체’에 분산시키는 것이며, 바로 이 구조 안에서 신뢰가 자율적으로 유지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책임 회피의 분산 구조(dispersed responsibility)로 해석된다. 우리는 모든 책임이 특정 주체에게 집중되는 구조보다, 여러 개의 역할이 시스템 내에서 자율적으로 견제되며 돌아가는 시스템에 더 안정감을 느낀다. 블록체인은 바로 이 구조적 안전성을 통해 심리적 신뢰의 기반을 만든다. 또한 블록체인은 신뢰를 위한 ‘감시’가 아니라 ‘기록’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감시의 구조는 항상 감시자와 피감시자라는 권력 관계를 내포하지만, 기록은 모든 참여자가 동등하게 접근 가능한 정보를 의미한다. 이 차이는 시스템에 대한 수용도와 정당성, 그리고 지속 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결국, 중앙화된 신뢰는 감정적으로는 편리하지만, 구조적으로는 위협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이 작동하는 동안에는 편리함에 취하지만, 그 신뢰가 무너졌을 때야말로 진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실직, 파산, 혼란, 사회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이며, 비용이다

 신뢰는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자산이다. 우리는 매일 커피 한 잔을 살 때도, 온라인에서 물건을 고를 때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무수히 많은 거래를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수많은 선택 속에서 진짜 신뢰란 무엇일까?

 

 이 글이 말하려는 핵심은 단 하나다. 신뢰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 우리는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는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구조 안에 있다고 믿을 때 비로소 안심한다. 때로는 그 구조가 브랜드일 수도 있고, 후기일 수도 있고, 법일 수도 있고, 플랫폼이나 알고리즘일 수도 있다. 핵심은 그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든 비용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비용이 눈에 보이는 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블록체인은 이 구조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사례다. 인간의 정직함을 믿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이 거래를 검증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했다’는 점이 결국 신뢰의 담보가 되는 구조. 이것은 곧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신뢰가 감정이 아닌 설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 신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설계되었기에 신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믿는다고 할 때,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 사람이 가진 평판? 브랜드? 리뷰? 혹은 시스템의 반복성과 오류 방지 알고리즘? 결국 진짜 신뢰는 상대방이 아니라, ‘신뢰를 유지시켜주는 구조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비용을 요구한다.

파레토의 법칙처럼, 신뢰는 일부 핵심 구조가 전체를 지탱하고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앞으로의 소비, 투자, 인간관계, 플랫폼 이용에서 “이 구조는 신뢰를 만들 수 있는가?”, “그 신뢰를 위해 어떤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 습관이다. 이 질문이 당신을 더 현명한 사용자이자, 더 전략적인 신뢰 설계자로 만들어줄 것이다.
신뢰는 이제 감정이 아니라, 비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불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