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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심리학

정치 성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가족, 지역, 교육이 형성한 정치 정체성의 심리

by thatswrite 2025. 5. 29.

정치 정체성은 사회화 과정에서 형성된다: 가족이 심어주는 첫 정치 틀

 우리가 어떤 정치 성향을 갖게 되는지는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사회화(socialization)란 개인이 사회의 규범, 가치, 행동 양식을 배우는 과정을 의미하며, 정치 사회화는 정치적인 생각, 태도, 믿음을 배우는 과정을 말한다. 특히 유년기에는 부모의 의견이 곧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아, 가족의 정치 성향은 초기 정치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많은 연구들은 부모의 정치적 성향이 자녀에게 높은 수준으로 전이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미국의 정치심리학자 제니퍼 제닝스(Jennifer Jennings)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와 자녀 간의 정치적 일치는 약 70%에 달할 정도로 강력하며, 이는 단순한 의견의 전파가 아닌 감정적 애착과 가치 공유를 통한 신념의 내재화로 설명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진보적 성향일 경우, 자녀도 자연스럽게 인권, 평등, 복지에 대한 중요성을 조기에 학습하게 된다. 반대로 보수적인 가정에서는 질서, 전통, 국가안보 같은 가치를 우선시하는 관점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초기 학습은 단순히 의견을 주입받는 것을 넘어서, 정체성(identity) 형성에 깊숙이 개입한다. 즉,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정의할 때, "우리 가족은 어떤 정치를 지지하는가?"가 하나의 기준이 되며, 이는 추후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인 '인지 프레임(cognitive frame)'으로 확장된다. 정치적 사건을 해석할 때 부모의 관점을 내면화한 채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가족은 뉴스 소비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TV 채널 선택, 특정 언론 매체의 신뢰 여부, 정치 뉴스에 대한 반응은 모두 정치적 감수성 형성에 기여하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서적 기억이 강하게 남는 선거 시즌, 정치인의 이미지, 캠페인 구호 등은 가족과 함께 경험하며 무의식적으로 정치적 감정을 형성한다. 결국 정치 성향은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일상의 분위기 속에서 사회화되는 '심리적 정체성'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 성향의 지역적 패턴: 공간이 사고를 만든다

정치 정체성의 심리

 

 정치 성향은 단지 개인의 성향이나 가족의 영향으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큰 역할을 한다. 한 지역의 역사, 경제 구조, 공동체 문화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치적 사고방식과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어디에 사느냐’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바꾼다는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예를 들어, 농촌 지역과 도시 지역 간의 정치 성향 차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의미한 패턴으로 나타난다. 농촌은 대개 전통과 보수적인 가치를 강조하며 공동체 중심의 질서를 중시하는 반면, 도시는 다문화적이고 진보적인 변화를 더 빠르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각 지역이 겪어온 경제적 변화와 교육 수준, 정보 접근성의 차이 등과 관련이 깊다. 한국에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특정 광역시와 도 단위 지역 간의 투표 성향 차이는 선거 때마다 뚜렷이 드러난다.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공간적 경험이 ‘규범적 기대’를 만든다고 본다. 다시 말해, 내가 사는 지역에서 다수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가치를 지지한다면, 나 역시 그 흐름에 편입되거나, 적어도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워지는 심리적 압력을 느낀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동조압력(conformity pressure)’과 일맥상통한다.

 

 이와 함께 지역 기반의 교육, 언론, 종교 단체, 지역 정치인 등은 지역 주민의 정치 정체성에 강한 영향을 준다. 특히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선동적 구호, 지역 예산의 분배, 개발정책 등의 수혜 여부는 정치에 대한 '감정적 기억'으로 남아 차기 선거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을 구성하는 하나의 심리적 환경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나의 정치’가 아닌 ‘우리 지역의 정치’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교육이 바꾸는 정치 인식의 틀: 인지 프레임의 재구성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다. 교육은 개인의 세계관과 인지적 구조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사회적 기제이며, 이는 정치적 태도와 판단에도 깊은 영향을 준다. 특히 정치 심리학에서는 교육 수준이 인지 복잡성(cognitive complexity)과 비판적 사고 능력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즉,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기존의 신념과 다른 정보를 수용하는 유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인지 프레임(cognitive 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즉 '해석의 틀'을 의미한다. 교육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사회 문제와 역사적 맥락, 정치 체계의 작동 원리를 학습하며, 그 결과 정치를 바라보는 렌즈가 보다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뀐다. 이는 특히 대학 교육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을 배우며 구조적 불평등이나 제도적 한계를 이해하게 되면 단순히 '누가 옳고 그르다'는 이분법적 판단을 넘어서 시스템 차원의 인식을 하게 된다. 그 결과,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넘어서, 정책 내용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중심으로 판단하려는 태도가 강화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데이턴(Robert Dalton)은 교육이 정치적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효능감이란 "내가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심리적 확신을 말하는데, 이는 정치 참여율을 높이고, 적극적인 정보 탐색 행위를 유도하는 중요한 심리 변수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이러한 효능감이 강화되어, 단순히 부모나 지역 분위기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 무조건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교육 환경은 특정한 정치적 방향성을 내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진보적 교육철학을 지닌 학교나 교사는 평등, 다양성, 복지 등의 가치를 강조하는 반면, 보수적 가치에 기반한 교육기관에서는 질서, 책임, 전통 등을 강조한다. 이런 가치들은 교과과정뿐만 아니라 토론의 방식, 교내 분위기, 학교의 상징적 메시지 속에 녹아 있다. 특히 토론과 비판적 사고를 중심으로 하는 수업 방식은 학생들의 정치 인식을 더 자율적이고 논리적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이는 기존의 정치 성향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교육은 단지 지적 수준만이 아니라, 사회적 연결망과 정보 접근성을 확장시킨다. 대학교 진학을 통해 다양한 지역, 배경,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며, 이로 인해 기존에 제한된 정보 환경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는 '접촉 가설(contact hypothesis)'과도 연결된다. 다양한 집단과의 접촉은 편견을 줄이고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게 하는데, 정치 성향 역시 이 과정 속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 결국 교육은 ‘정치적 정체성’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을 키우는 심리적 훈련장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 성향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경험이 만든 심리적 이동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정치 성향이 고정된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정치 심리학에서는 정치 정체성이 변화 가능성이 높은 심리 구조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정치 성향은 나이, 경험, 사회적 충격 등을 통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사건이나 감정적으로 강렬한 경험은 기존의 인지 프레임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치적 태도를 형성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경제적 위기를 겪은 사람은 이전까지 무심하던 복지 정책에 대해 갑작스레 관심을 갖게 되고, 사회적 안전망의 중요성을 절감하면서 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하게 될 수 있다. 반대로 범죄 피해를 당하거나 공공질서에 대한 불만을 겪은 사람은 더 강력한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적 정치관을 갖게 되는 경향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정보에 의한 설득이 아니라, 삶의 맥락에서 비롯된 감정적 전환이며, 이 때문에 매우 강력하고 오래 지속된다.

 

 심리학에서 이를 ‘삶의 전환점(turning point)’이라고 부른다. 특정 사건이 개인의 가치 체계를 재정렬하고, 정치 성향도 함께 이동하는 것이다. 미국의 9.11 테러 이후 보수주의 성향이 증가했다는 연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공보건 정책에 대한 인식이 급변했다는 분석은 이를 잘 보여준다. 즉, 사람은 변화에 저항하는 동시에,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면적 존재다. 또한 개인의 사회적 이동도 정치 성향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노동자로 일하던 사람이 창업을 하거나 중산층으로 편입될 경우, 이전에는 진보적 정책에 공감하던 사람이 세금 문제나 규제 이슈에 더 민감해지면서 보수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정체성의 재구성과 연관되며, 정치 성향은 단지 '내가 누구를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항상 합리적 판단을 기반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변화에 대해 ‘후향적 정당화(retrospective rationalization)’를 시도한다. 즉, 자신이 정치 성향을 바꾼 이유를 사후적으로 논리화하고, 이전의 선택을 부정하거나 과도하게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간이 일관된 자아 개념을 유지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로 설명되며, 때로는 정치적 극단주의나 이념적 적대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정치 성향은 일생 동안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정체성이다. 이는 새로운 경험, 사회적 충격, 삶의 위치 변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갱신되며, 우리 삶의 서사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심리적 유연성을 이해할 때, 우리는 타인의 정치 성향도 ‘고정된 적’이 아닌 ‘이해 가능한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