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돈이 되는 심리학

알고도 속는 이유: 사기꾼의 심리는 왜 먹힐까?

by thatswrite 2025. 6. 8.

사기꾼은 왜 항상 그럴듯한 이야기로 시작하는가?

 사기꾼이 우리를 속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첫인상’이다. 첫인상은 단 한 번의 만남에서 결정되고, 그 이후 모든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인지 편향을 일으킨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초두 효과(primacy effect)’라고 부르며, 사람이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형성한 인상이 이후 평가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경향을 설명한다. 사기꾼들은 이 초두 효과를 교묘하게 활용한다. 단정한 외모, 고급스러운 언어 습관, 풍부한 배경지식, 자신감 있는 태도 등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신뢰를 느끼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특히 ‘말을 잘하는 사람’에 대한 무의식적 호감은, 우리가 그 사람의 주장이나 제안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이미 신뢰를 형성하게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간의 뇌는 정보의 정확성보다 그 정보가 주는 ‘안도감’이나 ‘신뢰감’을 더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사기꾼은 여기에 매우 능숙하다. 예를 들어 부드럽고 확신에 찬 말투로 “이건 위험이 거의 없는 투자입니다. 저는 직접도 투자하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 말의 진위를 따지기보다 상대방이 얼마나 ‘진심 같아 보이는지’에 주목한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후광 효과(Halo Effect)’와 맞물린다. 한 사람이 어떤 한 가지 긍정적인 특징(예: 유창한 언변)을 보일 경우, 그 사람의 전반적인 성격이나 능력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더불어 ‘유사성’은 신뢰 형성에 매우 강한 영향을 미친다. 나와 같은 지역 출신이거나, 같은 학교, 혹은 비슷한 인생 경험을 공유한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상대를 더 쉽게 신뢰한다. 사기꾼들은 이런 요소를 교묘하게 설계한다. 사전조사를 통해 대상의 정보를 수집하고, 마치 우연처럼 그 정보들을 대화 속에 흘려 넣는다. “저도 원래 XX동 살았었어요.”, “그 선생님 저도 배운 적 있어요.” 같은 말은, 처음 만난 사람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빠르게 친밀감을 형성하게 만든다.

 

 사기꾼은 또한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 예를 들어 실직, 가족 문제, 경제적 압박 등으로 감정적으로 불안정해진 타이밍을 포착해 접근한다. 이 상태의 사람은 타인에 대한 방어적 인식이 낮아지고, 위안을 주는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며, 이는 사기꾼에게는 ‘최적의 진입점’이 된다. 감정이 힘든 시기일수록, 사람은 자신의 논리보다 감정에 의존하게 되며, 이때 상대방이 제공하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해답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처럼 사기꾼은 단지 거짓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우리가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라는 인지적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들은 논리보다 감정, 사실보다 신뢰, 진실보다 분위기를 설계하는 데 집중한다. 우리가 ‘첫인상’이라는 감각적 신뢰에 속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진실을 판단하기보다 관계의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생존 메커니즘을 따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경고를 들어도 사기를 당할까?

 사기를 당한 사람들 중 다수는 "사실은 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처음엔 의심했는데, 계속 듣다 보니 믿게 됐어"라고 말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순진했던 게 아니다. 경고를 들었고, 의심도 했지만 결국 자신이 내린 초기 결정을 스스로 정당화하면서 사기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이때 가장 주요하게 작동하는 심리기제가 바로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이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불일치할 때 심리적 긴장을 느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보나 기억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고수익 투자 사기에 참여했다고 하자. 이후 친구나 가족이 “그거 위험한 거야”라고 말하면, 그는 경고를 수용하기보다 스스로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내가 모르는 게 아니야,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이번은 달라”, “나는 이미 정보도 많이 찾아봤고, 조심하고 있어”라는 식이다. 이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보다, 선택의 정당성을 찾는 쪽이 심리적으로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기꾼은 기막힌 역할을 한다. 피해자가 의심을 갖는 순간, 마치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쯤에서 의심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지금까지 300명 넘게 수익을 내고 있어요”라는 식으로 정보를 제공한다. 이때 피해자는 자신의 의심을 외면하고, 오히려 사기꾼이 제공한 확증을 통해 ‘나는 옳은 판단을 한 거야’라고 다시 한번 자기 확신을 굳히게 된다. 이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도 연결된다. 이미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린 사람은 그 결론을 지지하는 정보만을 선별하고, 반대되는 정보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심리 기제는 매몰 비용(sunk cost effect)이다. 시간이든 돈이든 어느 정도 투입한 이후에는 “지금 그만두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면서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게 된다. 사기꾼은 이를 적극 활용해 ‘조금만 더 투자하면 회수 가능하다’, ‘당신은 이미 반 이상 온 상태다’ 등의 메시지를 제공한다. 피해자는 더 깊이 빠지고, 나중에는 자신이 사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나중에 어떻게든 회복하자’라는 환상 속에 머무르게 된다.

 

 이처럼 사기는 단순히 감쪽같은 말솜씨나 정보 조작이 아닌, 사람 내면에 있는 심리적 불일치의 해소 욕구를 정밀하게 겨냥해 작동한다. 우리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 기분과 결정에 맞춰 세상을 해석하려는 존재다. 사기꾼은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당신이 이미 옳은 판단을 했다는 감정’을 조작하는 데 집중한다.

사기꾼은 어떻게 신뢰를 ‘시스템’처럼 설계하는가?

 사기는 더 이상 혼자 움직이는 개인의 범죄가 아니다. 현대의 사기꾼들은 거의 ‘기업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뢰를 구조화하고 집단적 설득 체계를 구축한다. 이들은 개별 피해자 하나하나를 설득하기보다, 집단 심리와 권위의 이미지를 먼저 구성해놓고 그 구조 속에 피해자를 편입시킨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증거(social proof)이다. 우리가 식당을 고를 때 줄 서 있는 가게에 더 끌리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믿고 따라 하는 것을 보면 경계심이 무뎌진다. 사기꾼은 여기에 착안해 "이미 1,000명이 이 상품에 투자했어요", "유명 인플루언서도 이걸 사용했죠" 등의 문구를 강조한다. 또 허위 후기, 가짜 인터뷰 영상, 조작된 투자 내역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는 ‘내가 잘 몰라도 남들이 다 한다면 괜찮겠지’라는 심리로 접근한다.

 

 이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것이 권위 편향(authority bias)이다. 사람들은 특정 지위나 직함을 가진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신뢰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전직 판사 출신’, ‘의학박사’, ‘방송 출연 전문가’ 같은 타이틀은 정보를 검증하는 대신, ‘이 사람이 말하니 신뢰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강화시킨다. 사기꾼은 이러한 권위성을 허위로 구성하거나, 아예 공범을 등장시켜 구조화된 ‘권위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 강의실에서, 세미나에서, 줌 회의에서 그들은 ‘공식적’인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자신들의 메시지를 더 쉽게 주입시킨다.

 

 더 나아가 이 시스템은 심리적 안전망과 공동체 착시를 유도한다. “우리끼리만 아는 정보예요”, “VIP만 모시는 모임입니다”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내가 특별한 그룹에 속해 있다’는 자존감을 준다. 인간은 원래 집단 안에 소속될 때 더 강한 신뢰를 느낀다. 이러한 착각은 피해자가 사기임을 의심하게 될 때조차, 집단의 정체성과 충돌할까 봐 침묵하거나 회피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사기꾼은 ‘사기’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신뢰는 관계에서 형성되기도 하지만, 구조 속에서도 얼마든지 설계될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누군가를 믿은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믿게 만든 심리적 환경에 조작당한 셈이다.

감정이 흔들릴 때 사기가 시작된다

 사기꾼이 가장 교묘하게 파고드는 틈은, 바로 감정이다. 논리적으로는 말도 안 된다고 느끼면서도, 감정적으로는 끌리는 순간이 있다. 이것이 바로 사기꾼의 주 무기다. 사람의 판단은 언제나 이성과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동하지만, 급박하거나 외롭거나 절박한 순간에는 감정이 이성을 압도한다. 이때 사기꾼은 의도적으로 정서적 공진(emotional resonance)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당신 같은 분을 정말 기다리고 있었어요”라는 말은 단순한 영업 멘트 같지만, 실제로는 ‘존중받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혹은 “이 기회는 이번 주까지만 가능합니다”라는 말은 조급함을 유도해 충동 결정을 유도한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희소성의 원리(scarcity principle)와 손실 회피(loss aversion)를 동시에 자극하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정서적 조작은 사기꾼이 피해자에게 ‘도와주는 사람’, ‘공감해주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며, 이는 방어를 무장해제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연애 사기나 가족을 사칭한 피싱은 ‘신뢰할 수 있는 감정 관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더욱 취약하다. 심지어 피해자는 “그 사람이 진심 같아서”라고 말하며 자신의 감정적 판단을 옹호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사기꾼은 더 이상 외부 인물이 아니라, 피해자 내부에 자리 잡은 ‘믿음’이 된다.

 

 감정은 일시적이지만, 그때 내린 결정은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기꾼은 그 짧은 찰나의 감정적 틈을 파고들어 평생 잊을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그리고 피해자는 시간이 지나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라고 믿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감정은 인간을 가장 쉽게 조작할 수 있는 통로이며, 사기꾼은 바로 이 문을 열 줄 아는 심리 설계자다.

사기를 막는 방법은 정보보다 ‘심리적 면역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기당하지 않으려면 정보를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기를 막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심리적 면역력(psychological immunity)이다. 이는 즉,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감정이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자기 인식력과 회복력을 의미한다.

 

 사기 피해자들은 대체로 “설마 내가 당하겠어?”, “난 똑똑한 편이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런 과잉 자신감은 **과잉 확신 편향(overconfidence bias)**으로 이어지며, 방어 기제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첫 번째로 필요한 태도는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실제로 FBI 보고서에 따르면, 사기에 가장 많이 속는 사람들은 정보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은 충분히 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자기 감정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다. 너무 조급할 때, 너무 외로울 때, 너무 뭔가에 집착할 때 우리는 취약해진다. 이때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 잠시 멈추고 ‘지금 이 결정이 감정에 의해 흔들린 건 아닌가?’를 돌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빠른 사고는 효율적이지만, 오류에 취약하다"라고 말하며, 특히 감정이 개입된 판단은 항상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세 번째는 주변의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경고를 ‘질투’나 ‘무지’로 해석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기를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자기 객관화(self-distancing)라는 심리 기술로, 감정적으로 과열된 판단을 식히는 데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는 ‘다수가 한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다’는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신뢰는 숫자가 아니라 근거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나만 안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니고, 모두가 안다고 해서 진짜도 아니다. 사기꾼은 숫자와 집단을 무기처럼 사용하지만, 결국 그것을 믿는 사람의 심리에서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