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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심리학

대선 결과에 따른 합리화와 심리적 방어

by thatswrite 2025. 6. 3.

지지한 후보가 졌을 때 찾아오는 인지 부조화: 뇌는 이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유권자가 가장 직접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식적 절차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유권자들은 후보자에게 단지 표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 정체성, 이상까지도 함께 투영한다. 이로 인해 선거 결과는 단순한 '숫자의 승패' 그 이상을 의미한다. 특히 지지한 후보가 패배했을 때, 유권자는 강한 심리적 충격을 경험한다. 이 충격은 단순히 아쉬움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사고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현상을 유발한다.

 

 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가 제시한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 현실 사이에 충돌이 생기면 심리적 긴장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선거에서 내가 지지한 후보가 진다는 것은 곧 "내 판단이 틀렸다"는 현실과 직면하게 되는 것이며, 이는 자존감, 가치관, 정체성까지 흔드는 심리적 충격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후보의 진정성, 정책 역량, 도덕성 등을 믿고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유권자에게는 그 결과 자체가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뇌는 자동적으로 다양한 인지적 방어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불신’이다. “결과가 조작된 건 아닐까?”, “언론이 편향된 보도를 했기 때문이야.”처럼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외부 원인을 탓하는 식의 반응이다. 이는 인지 부조화가 강할수록 더 격렬하게 나타나며, 유권자가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반응이다. 특히 SNS나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불신적 해석이 순식간에 확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심리 상태를 공유하며 서로의 인지 부조화를 강화시켜 주는 '집단적 확증편향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부조화 상태에서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도 왜곡된다. 지지 후보의 패배 이유에 대한 보도나 분석이 설득력이 있더라도, 유권자는 이를 비판적 시선으로 보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선거 결과에 대한 즉각적 수용은 ‘합리적 사고’라기보다는 ‘심리적 통과의례’에 가까운 것이며, 우리 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결코 수동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기 정당화의 심리 메커니즘: ‘내가 틀린 게 아니라 세상이 이상한 거야’

대선 결과에 따른 합리화와 심리적 방어

 

 지지한 후보가 낙선한 후, 많은 유권자들이 선택하게 되는 또 다른 심리적 방어 기제는 바로 자기 정당화(Self-justification)다. 이 개념은 인지 부조화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요인을 끌어다 써서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애초에 특정 후보를 지지한 이유가 자신의 정치적 가치, 사회적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면, 그 후보의 패배는 곧 나의 판단력, 이상, 지향점 자체에 타격을 입히는 결과가 된다. 이때 자기 정당화는 내 선택을 보호하고,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심리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유권자가 "이 후보는 경제 전문가이고,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믿고 투표했다면, 패배 결과를 받아들일 때 단순히 “아쉽다”는 수준을 넘어서, “국민들이 진짜 중요한 걸 몰라서 그래”, “유권자들이 언론에 속은 거야” 같은 외부 탓하기 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중심적 귀인 편향(Egocentric Attribution Bias)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 심리는 자신이 선택한 판단은 올바르며,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 원인은 외부에 있다는 인식으로 귀결된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는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계속해서 '합리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이런 자기 정당화 과정은 SNS에서 더욱 증폭된다. 특히 '공감'이라는 소셜미디어 특유의 정서적 공유 기능이 작동하면서, 지지 후보의 패배에 대해 실망하거나 분노한 사람들이 모여 “우리만 옳고, 세상은 잘못됐다”는 확신을 더 굳히게 된다. 이는 ‘정보의 소용돌이’처럼 되풀이되며, 점차 합리적 성찰보다는 감정적 정당화에 빠지게 되는 위험을 내포한다.

 

 자기 정당화는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패배의 원인을 점점 왜곡되게 기억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이는 기억의 선택적 재구성(selective memory reconstruction)이라는 인지 심리학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나중에는 “그 후보는 원래 진짜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때 당시에 여론조작이 너무 심했지”와 같은 식의 '회상 편향'까지 작동하게 된다. 이런 기억의 왜곡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며, 패배에 대한 감정적 여진을 길게 이어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브랜드 마케팅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된다. 애플이나 테슬라처럼 강한 팬덤을 가진 브랜드의 경우, 제품에 결함이 드러났을 때 소비자는 “이건 의도된 실험이다”, “언론이 확대 해석하는 거다” 등으로 자신의 소비 선택을 감정적으로 방어한다. 정치적 지지도 이와 비슷하게 작용하며, 지지자가 후보와 동일시하는 정도가 강할수록 패배 시점의 자기 정당화는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

결국, 자기 정당화는 우리를 안심시켜주는 동시에, 때로는 현실을 왜곡시키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다. 이 기제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선거 결과를 보다 균형 있게 받아들이고, 다음 선택의 기준을 성숙하게 재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치적 애도 과정과 감정 정리의 심리학: 유권자 마음에도 치유가 필요하다

 정치적 패배는 단순한 선택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특히 그 선택에 감정과 신념이 깊이 투영되어 있었다면, 유권자는 마치 개인적인 상실을 겪은 것처럼 깊은 감정의 충격을 받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정치적 애도(political grieving)’라고 부른다. 이 개념은 실제로도 사회 심리학자들이 선거 이후 나타나는 유권자의 심리 상태를 분석할 때 사용되며, 그 과정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겪는 슬픔의 단계와 유사하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충격과 부정(Denial)이다. 내가 믿고 응원했던 후보가 낙선했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말도 안 돼, 뭔가 조작된 게 분명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단계에서는 유권자들이 개표 방송을 끝까지 못 보고 채널을 돌리거나, 아예 뉴스를 끄고 외면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현실 부정은 감정적 방어막을 형성해 줌과 동시에,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심리적 장치다.

 

 그 다음은 분노(Anger)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에 대한 감정적 해석이 시작된다. 경쟁 후보를 비난하거나, 같은 지지층 내부에서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선거 전략이 틀렸어”, “막판에 실수만 안 했으면” 같은 식의 감정적 해석은 종종 내부 분열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현실보다 감정에 더 무게를 두며, 분노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쉽게 확산된다. 특히 SNS에서는 분노를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정체성과 연대감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다음 단계는 타협(Bargaining)이다. “다음 선거에는 꼭 이기자”, “우리가 더 열심히 홍보했어야 했다”와 같은 표현들은 과거를 반성하면서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움직임이다. 여기서 유권자는 자신의 감정을 재구성하고, 다시금 정치적 행동을 위한 의미 있는 동기부여를 모색한다. 이 단계는 곧 감정의 수습과 자기 정비의 시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서야 슬픔(Depression)이 찾아온다. 이 시점에서 유권자는 비로소 감정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왜 이토록 지친 걸까?", "내가 뭘 그렇게 걸었나?"라는 자문이 시작되며, 이는 정치적 이상과 현실 간의 간극을 마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특히 청년층이나 사회적 약자처럼 자신의 생존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치를 체감하는 유권자일수록, 패배로 인한 실망감은 더 깊다. 이 슬픔이 오래 지속되면 정치적 무관심(political apathy)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마지막은 수용(Acceptance)이다. 여기서 유권자는 결국,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결과를 인정하고, 다시금 일상과 정치를 연결하기 위한 다리를 놓는다. “다음엔 더 나은 선택을 하자”, “이번 선거로 얻은 교훈은 이것이야”와 같은 자기반성과 계획이 등장하는 이 시점은 가장 성숙한 정치적 태도의 기반이 된다.

 

 이러한 정치적 애도 과정은 개인의 감정 정리를 넘어, 집단 차원의 정치 참여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미국의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한 이후 수많은 지지자들이 ‘Women’s March’에 참여했고, 이 경험은 단순한 슬픔을 행동으로 전환시킨 대표적 사례다. 한국에서도 특정 정당 지지자들이 낙선 후 지역 커뮤니티를 조직하거나, 새로운 정보 채널을 만들어 여론 형성에 참여하는 사례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결국, 유권자의 정치적 애도는 민주주의 과정의 일부다. 감정적 소모는 때로 회복력을 기르고, 다음 투표를 위한 더 강한 판단 기준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중요한 건 이 감정의 흐름을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고 건강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정치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진짜 의미에서의 ‘주권자’로 거듭날 수 있다.